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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수라상 '진미'.. 요즘엔 잔칫상 '감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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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울산한마음복지재단
작성일21-12-02 11:37 조회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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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과거엔 수라상 '진미'.. 요즘엔 잔칫상 '감초'

기자 입력 2021. 12. 02. 10:20 수정 2021. 12. 0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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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면에다 고기와 채소를 넣어 만든 잡채. 이렇게 만드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궁중요리로 출발한 잡채는 본래 갖은 나물만을 익혀 무친 요리였다. 잡채에 고기나 당면이 들어간 건 근대 이후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 이우석의 푸드로지 - 잡채(雜菜)

잡채 맛있게 만들어 바친 문신 이충

광해군 마음 사로잡아 정이품 출세

재료 보고 지방상황 파악했단 얘기도

숙주 등 갖은 나물 익혀 무친 요리

근대부터 썬 고기·당면 넣기 시작

중국선 돼지기름에 빠르게 들들 볶아

미국선 중국식 잡채 ‘찹 수이’로 즐겨

감염병의 위험이 여전하지만 파티의 계절이다. 일상찾기 중 1년 이상 멈췄던 모임이 많다. 송년 시즌까지 겹쳐 곳곳에 사람들이 모여 송년 파티를 열 때다. 파티에는 언제나 음식이 있게 마련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파티는 ‘친목을 도모하거나 무엇을 기념하기 위한 잔치나 모임’을 뜻하며, 모임이나 연회, 잔치로 순화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또 잔치란 ‘기쁜 일이 있을 때에 음식을 차려 놓고 여러 사람이 모여 즐기는 일’이라 정의한다. 결국 잔치에는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단 얘기다. 한식 잔칫상에서 빠뜨릴 수 없는 메뉴가 잡채다. 외국인들이 각별히 좋아하는 요리이기도 하다.


해외 유명 한식당에서는 잡채가 매출의 커다란 축을 담당하고 있을 정도다. 잡채(雜菜)란 무엇인가. 갖은 채소와 고기를 잘게 썰어 볶은 후 삶은 당면을 넣고 버무린 음식이다. 원래 잔칫상에나 오르던 고급 요리였다. 재료도 수월찮게 들고 손도 많이 간다. 평소 가정에서 잡채를 해달라고 하면 주방 담당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많은 것이 풍족해진 요즘도 이 정도니 예전엔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400여 년 전엔 잡채를 잘 만들어 출세한 이도 있었다. 문신 이충(李沖·1568∼1619)은 광해군 때 집에서 만든 잡채로 임금의 마음을 사로잡아 정이품 호조판서의 자리까지 올랐다고 한다.


광해군일기(정초본 138권)에 잡채상서(雜菜尙書)란 말이 등장한다. 이는 임금에게 잡채를 가져다 바치고 제수받은 상서를 이른다. 광해군일기에 “그는 진기한 음식을 만들어 사사로이 궁중에다 바치곤 했는데, 왕은 식사 때마다 반드시 이충의 집에서 만들어 오는 음식을 기다렸다가 수저를 들곤 했다. 당시에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조롱하기를, 사삼각로(沙蔘閣老) 권세가 처음에 중하더니 잡채상서 세력은 당할 자 없구나”라고 기록돼 있다. 그가 만든 음식 중 잡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도 있다. “채소에다 다른 맛을 가미했으니 그 맛이 희한했다.”


그래서 당시 이런 노래가 돌았다. “처음에는 사삼각로 권세가 드높더니, 지금은 잡채상서 세력을 당할 자가 없다.” 더덕(沙蔘) 강정으로 왕의 사랑을 구했던 좌의정 한효순과 잡채로 출세한 이충을 비꼬는 것이다. 호조판서는 지금의 기획재정부 장관 격이며 이충이 죽은 다음 우의정(부총리)에 제수됐으니 그 얼마나 대단한 맛이었길래 출세 가도가 활짝 열렸을까.


잡채는 본래 궁중요리였다고 한다. 궁중요리의 기본이 팔도에서 진상한 진미를 한데 모아 만드는 조리법인데 잡채가 딱 그렇다는 것. 그래서 이 같은 재미난 이야기도 전해진다. 임금은 수라상에 오른 잡채를 먹으면서 무엇이 부족한지 파악해 팔도 지방의 현 상황을 짐작하는 척도로 활용했다는 얘기다. 밥을 통해 가뭄이나 흉작을 가늠해야 하는데 신하가 진상한 음식을 따로 챙겨 먹었다니, 광해군은 단단히 실정을 한 셈이다.


어쨌든 당시의 잡채는 지금의 당면잡채와는 다른 것이다. 잠와유고(潛窩遺稿) 등 문헌에 따르면 숙주와 무, 도라지, 오이 등 갖은 나물을 익혀서 무친 요리가 잡채다. 여기다 식초를 넣어 먹는다고 적었다. 일종의 나물 모둠으로, 잡채의 뜻과 일치한다. 약 200년 뒤 정조 때에도 보만재총서(保晩齋叢書)에 잡채를 만드는 법이 거의 비슷하게 나와 있다.


다만 17세기(1670년쯤)에 등장한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에도 잡채 조리법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는데 수많은 나물과 함께 꿩고기와 버섯 등이 다양하게 들어가 요즘 잡채 형태와 비슷하다. 이름은 같아도 지방마다 집마다 잡채를 만드는 법이 달랐을 것으로 추측된다.


잡채에 지금처럼 채 썬 고기가 들어가는 것은 근대에 들어서다. 고종 때 김기수의 ‘일동기유(日東記遊)’에 등장하는 잡채는 고기와 채소를 가늘게 썰고 콩을 섞어 버무린다고 했다. 여기에 자연스레 당면(唐麵)이 들어갔다. 고구마 녹말로 만든 건국수인 당면은 당시에 인기를 끌던 식재료다. 원래 화교들이 집에서 만들어 팔던 것인데 1919년 황해도 사리원에 세워진 대형 당면공장 덕에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 이때부터 각종 요리에 당면을 넣는 문화가 널리 퍼졌다.


1924년 요리책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잡채는 도라지, 미나리, 표고버섯, 석이버섯 등 각종 채소와 소고기, 돼지고기를 넣고 만드는데 여기에다 불린 해삼과 전복을 가늘게 썰어 넣으면 좋다고 나온다. 당면도 등장하는데 ‘잡채에 당면을 넣으면 좋지 않다’고 적혀 있다. 이미 잡채에 당면이 들어가기 시작한 후라는 방증이다. 어쨌든 이 시기부터 당면은 우리식 잡채의 주재료가 됐고 요즘도 잡채에 당면을 빼면 섭섭할 이들이 많을 정도로 사랑받고 있다.


한국은 잡채(雜菜)라 쓰지만 중국에선 짜후이()라 부른다. 번체 한자식 훈음으로는 잡회(雜)다. 회는 모아서 익히는 조미, 즉 볶음을 의미하니 여러 가지를 넣고 볶은 음식이란 뜻이다. 잡(雜)자는 지금 우리말에서 그리 좋지 않은 이미지로 쓰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다양함(variety)을 의미하는 좋은 말이다.


중국 잡채의 조리 원리는 우리 잡채와 비슷하지만 다양한 나물보다는 부추나 풋고추, 피망, 고수, 청경채 등 특정 채소와 러우쓰(肉絲)를 많이 쓴다. 각종 재료를 돼지기름에 빠르게 들들 볶아내는데 재료가 워낙 광범위하다 보니 잡채의 세계는 정말 다양하다. 고추잡채(靑椒 肉絲), 부추잡채(韭菜雜菜), 징장러우쓰(京醬肉絲)는 물론 중국음식점에서 익숙한 팔보채 역시 잡채의 한 종류다. 그냥 집어먹는 요리로도 좋고 밥이나 꽃빵(花捲)을 곁들여 먹기도 한다.


미국에도 중국식 잡채가 있다. 초창기 골드러시에 미국에 건너간 중국인(광둥 출신)들이 대중화시킨 요리로 찹 수이(chop suey)가 있는데 이게 바로 잡채의 곁가지 메뉴다. 이름은 짜쑤이(雜碎)의 광둥(廣東)어 발음에서 나왔다. 닭가슴살과 채소 등 값싼 재료를 잡다하게 썰어 간장에 볶고 전분을 넣어 버무린 요리로 미국 싸구려 중식당에서 선보였는데, 푸짐하고 열량이 많아 단숨에 서민층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주문 즉시 바로 볶아 종이상자에 담아주면 테이블이나 길거리에서 먹었다. 나무젓가락도 같이 줬다. 그래서 지금도 영어로 젓가락을 찹 수이를 먹는 막대기, 즉 찹스틱스(chopsticks)라 부른다고 한다. 값은 저렴했지만 그 폭발력은 대단했다.


19세기 말 미국 도시 빈민의 생활을 소재로 즐겨 다룬 오 헨리 소설에서도 찹 수이가 자주 등장한다. 재즈의 거장 루이 암스트롱도 ‘찹 수이(Cornet Chop Suey)’란 노래를 발표했다. 역설적이게도 9187만 달러(약 1096억 원)에 팔린 그림 제목도 ‘찹 수이’다. 사실주의 거장 에드워드 호퍼가 그렸다.


대만에도 물론 중국식 잡채가 있지만 아예 잡채란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짜차이탕(雜菜湯) 또는 차이웨이탕(菜尾湯)이라 부르는 요리인데 채소와 고기, 당면 등 잡채와 비슷한 식재료를 사용하지만 볶다가 물을 붓고 끓여낸다는 점이 많이 다르다. 맛좋은 잡채를 탕으로 먹다니 놀라운 일이다.


당면을 쓰고 채소와 고기를 넣는 것이 잡채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태국과 필리핀에도 비슷한 요리가 있다. 태국 운센이나 필리핀 판싯이 유사하다. 일본인들이 한국 잡채를 유난히 좋아하지만 오키나와(沖繩)에도 채소와 고기를 채 썰어 볶은 찬푸르가 있다. 거기는 당면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달콤하고 짭조름하면서도 기름기와 채소를 모두 채울 수 있어 좋은 잡채. 으슬으슬한 날씨에 당장이라도 한 그릇 챙겨 먹고 싶은 계절이다. 그래서 ‘당면과제’라 하는 게 아닐까?


■ 어디서 먹을까

◇ 서원반점=화교가 많이 사는 군산에 잡채밥으로 유명한 집이 있다. ‘서원반점’은 주문 즉시 밥과 잡채를 따로 볶아 뜨거운 잡채밥을 낸다. 진한 양념을 한 당면잡채를 볶음밥에 얹어준다. 절묘한 궁합이다. 칼칼한 맛의 뜨거운 잡채가 볶음밥의 느끼함을 감싼다. 아삭하게 볶은 채소와 부드러운 고기가 당면과 잘 섞여 든다. 따로 내주는 짬뽕 국물 역시 명불허전 군산의 것이다. 군산시 구시장로 63. 8000원.


◇ 간식집=당면이 들어가면 잡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산성시장 ‘간식집’엔 고기 부스러기와 당면이 들어간 잡채만두가 있다. 직접 빚은 두툼한 만두를 기름을 두른 번철에 바싹 지져 내 매콤한 고추장 소스에 찍어 먹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보들한 것이 보기에도 입맛을 당긴다. 잡채고로케보다 만두소로 넣는 편이 잡채 맛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다. 공주시 산성시장1길 46. 잡채만두 7개 3000원.


◇ 오향만두=화교가 운영하는 만두집인데 요리도 맛있어 주당들이 찾는다. 부추잡채는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메뉴. 다른 계절에는 굵고 여린 호부추 값이 비싼 탓이다. 올해는 11월 말 들어 시작했다. 아삭하고 향긋한 부추를 돼지고기 육사와 함께 재빨리 볶아냈다. 호부추 특유의 향을 살리기 위해 약하게 간을 했다. 꽃빵에 싸먹으면 상쾌한 향과 아삭함이 두드러진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맛로 22 삼원빌딩. 2만 원.


◇ 홍복=남대문 인근에서 중식 연회를 하기에 좋은 식당. 코스와 단품 메뉴를 다양하게 갖췄다. 아삭한 피망을 매콤하게 볶아낸 고추잡채도 잘한다. 강한 화력으로 고기와 채소를 볶아 함께 집어먹을 때 식감 대비가 좋다. 고기에 피망 향이 잘 배어들어 깔끔한 맛을 낸다. 1∼5층까지 홀과 연회석이 마련돼 있어 모임하기에 적당하다.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길 73-3. 2만6000원.


◇ 삼미관=골목 안에 위치한 중식 노포. 맛집 많기로 소문난 광주 동구에서도 숨은 맛으로 유명하다. 주문 즉시 주방에서 바로 볶아주는 잡채밥이 맛있다. 그때그때 센 불에 볶아 당면이 붇지 않고 탄력이 그대로 살아있다. 채소도 아삭하다. 1000원 추가하면 밥을 볶음밥으로 내준다. 잡채밥에 달걀부침도 올려주니 한 번에 여러 메뉴를 먹는 기분이다. 불향이 살아있어 마지막 한술까지도 향긋하다. 광주 동구 백서로189번길 14-32.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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